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산주의 유머/소련/경제와 문화 생활 (문단 편집) === 소련에서 받은 봉급 === >쥐꼬리만한 첫 임금을 받은 소련 노동자 한 명이 불만에 찬 목소리로 옆사람한테 물었다. > >"대체 이 박봉으로 어떻게 살라는 거야? 넌 이 월급으로 살아가는 게 가능이나 해?" > >'''"[[암시장|몰라. 사실 시도도 안 해봤어.]]"''' ※ 이는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노동가치설을 인정했으면서도 정작 노동자들의 노동이 기여하는 가치에 대해서는 형편없이 낮게 평가해 도저히 월급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임금정책이 시행되었기 때문. 그리고 생필품에 대해서는 아주 낮은 값으로 제공하거나 무료로 제공했지만 이 경우 공급이 폭주하는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부족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에 돈으로 살 수 있는게 그리 많지 않았고, 자동차나 카페트, 컴퓨터 같은 사치품은 없어도 되는거라는 명목 내지는 임의적인 가격 정책 때문에 몇달치~몇년치 봉급 수준으로 비싸게 책정했고, 암시장 물품의 경우에는 이보다 더 비쌌다. 이러니 다들 자연스럽게 부업을 찾게 되면서 별장에서 생산된 작물이나 중고품을 시장에 내다팔거나 연줄이 있는 사람은 외제품이나 희소품을 입수한 다음에 비싼값에 파는식으로 지하경제가 활성화되었는데 소련 말기에 태업죄로 기소된 사람들은[* 업무시간에 땡땡이치고 개인적인 부업을 하는 일이 매우 흔했다.] 판사 앞에서 니가 이 월급으로 살아보라고 소리를 지르며 반항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위에서 언급된 이유 때문에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저축률이 높았다. 건국 초에야 강제로 국가폭력으로 저축을 30% 이상으로 강제했지만 스탈린이 죽고 나서도 생필품 가격이 너무 심하게 싸서 돈을 주고도 물건을 사기힘든 부족현상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강제 저축 현상'이라고 부른다. 돈은 있지만 살만한 물건을 구하려면 줄을 길게 서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물건을 구하는 등의 수고를 들여야 했다. 8월 쿠데타~92년 초에는 최소한의 물자배분기능도 마비되고 물자들의 다수가 개인상점으로 흘러가다보니 줄서는 시간이 일하는 시간보다 많다는 기사가 뜰 정도였다. 반대로 소련 해체 이후로는 수입품의 가짓수가 증가했지만 저축자금이나 급여가 죄다 휴지조각이 되다보니까 물건은 있는데 돈은 없는 처지가 되었고 이러한 트라우마는 경제가 정상화된 이후로 이어져서 러시아의 개인저축률은 낮다.] 당대에도 많이 통용된 유머지만 현재도 동유럽이나 쿠바에서 많이 통용되는데 이유는 좀 다르다. 쿠바의 경우에는 이중통화제도로 공식임금은 너무 낮은데 반해 관광업 종사자는 매우 잘사게 되기 때문이고, 동유럽의 경우에는 1990년대 당시의 민영화 및 공공요금 인상 조치, 토지 사유화 등으로 소득에 비해 집값과 월세비와 공공요금이 너무 오르게 되다보니까 투잡을 뛰거나 불로소득을 먹고사는 경우가 많다보니 그런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